쿠바, 지금은 결심만. CUBA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몇 날 며칠을 주린 사람에게는 금은보화보다도 당장의 쌀밥이 귀물이다.
이처럼, 나 또한 나에게 없는 것을 바라 왔다. 나는 지금 병역의 의무에 매인 몸이다. 공군기지의 가장 높은 곳인 7층의 관제탑이 나의 근무지다. 관제탑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틀면 동해의 푸른 수평선이고, 오른쪽으로는 흰 풍력발전기가 성기게 박혀있는 높다란 대관령이다. 나는 철조망 바깥의 그것들을 바라보며 6주마다 돌아오는 외박의 때가 도래하기를 한숨을 푹푹 쉬면서 고대하는 것이다. 이러하듯 나에게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은 운신의 자유. 그러므로 내가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남의 간섭이 배제된 오로지 내 스스로 꾸려내는 모종의 사업이다. 남의 훈수와 오지랖이 없이, 손해를 보더라도 스스로 결정하여 나아감을 바라는 것이다. 그 사업들 중, 20대의 나에게 가장 와닿는 것은 여행이었다. 남들은 철마다 가는 해외여행 한번 해보지 못한 나였으므로 그것은 병역의 의무를 지기 이전에도 항상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반년이나 더 이곳에 묶여있어야 하는 신세로서 당장 훌쩍 떠날 수단이 없는 까닭으로, 나는 언젠가의 여행을 꿈꾸며 텔레비전으로나마, 인터넷으로나마 간접적인 체험을 하고 계획을 짜보았다.

 여러 지역들이 물망에 올랐다. 이미 페이스북 친구들의 배경으로 내 시야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에펠탑과 가우디의 걸작들은 내 흥미를 동하게 하기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더불어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여행지가 되었던 지역들도 그러했다. 전인미답의 오지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그럴 배짱도 없거니와) 적당한 생경함은 원했다. 오로지 나의 손으로 경비를 벌어내야 하는 점에서 지나치게 경비가 많이 소요되는 지역도 배제되어야했고, 보신주의자인 내 성정에 의하여 치안이 과히 좋지 못한 곳 또한 탈락했다. 초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일자무식 예비여행자의 까다로운 필터링을 거친 여행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모로코와 이란, 그리고 쿠바였다.

 그 세 곳 중에서 왜 굳이 쿠바를 골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어깨만 으쓱거리겠다. 잘 모르겠다.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에 경도된 사회주의 좌파인 탓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다. 카리브해의 푸른 낭만을 염두에 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라고 하겠다. 남미의 화끈한 햇볕의 탓도, 유쾌하고 강렬한 춤사위의 탓도 아니라고 하겠다. 그곳의 로컬푸드의 탓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역시 아니라고 하겠다. 내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식문화를 즐기기 위한 여행지 리스트에서 쿠바는 맨 마지막에 있어야 마땅하다. 곰곰히 따져보니 굳이 쿠바를 택한 까닭을 꼽자면 쿠바의 색과 올드카의 탓이라고 하겠다. 다소 싱겁다면 싱겁다. 건물의 알록달록한 색깔과 영화에서나 보던 그야말로 올드-카의 모습에 나는 관심이 갔던 것이다. 평소 미술에 관하여는 문외한인데다가 드림카가 기아의 쏘울일 정도로 자동차와는 인연이 박한 나인데 왜 그것에 관심이 쏠렸는지는 나도 정말 모르겠다. 어쨌든 쿠바는 모로코와 이란을 꺾고 내 첫 번째 해외여행의 목적지가 되었다. 내 일기장은 이 결심이 2014년 7월 23일의 일이라고 일러준다.


 쿠바를 알아볼 수단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전부였다. 공중파의 여행 관련 교양프로그램과 블로거들의 그리 많지 않은 쿠바 여행 후기를 찾아보았다. 며칠 간 세네 시간은 훌쩍 지날 정도로 쿠바에 흠뻑 빠졌다. 점심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입을 헤 벌린 채로 스크롤을 거푸 내리다가 관제탑 야간근무 상번하기를 예사로 했던 날들이었다. 사실 내용 중에 별 게 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실망을 했어야 당연할 내용들이 많았다. 아바나의 순수는 애저녁에 증발해버렸고, 지금은 오로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여행자의 자비심을 구걸하는 자들 뿐이라는 내용이 굉장히 많았다. 굶주림이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는 탓으로 그 구걸의 손길은 때 묻지 않아야 마땅할 어린 아이의 것도 있다는 말에 가슴이 저렸다. 더불어 쿠바에는 경이를 자아낼 만한 유려하고 웅장한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공산품이 없어 오로지 재료 본연의 맛에만 충실해야 하는 쿠바의 음식은 짭짤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내 관점에서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것들을 보고도 나는 연신 쿠바의 이름을 외웠다. 별 일도 다 있지.


 오늘, 2014년 9월 21일, 나의 결심은 유효하다. 
 이토록 무언가에 정신을 쏟은 것은 일곱 살의 공룡 이후로는 처음이다. 그만큼 뜨겁다. 이 결심이 실천으로 옮겨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상상 이상의 의지박약이라는 것을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탓이며 또한 변수가 많은 탓이다. 내가 동반자로 내정한 K군이 정말 갈 의지가 있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돌발한 사건으로 착실히 모아가던 경비가 단번에 날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스코어, 일단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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